Ksiazka · 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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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r: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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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의 앞에는 선형과 영채가 가지런히 떠 나온다. 처음에는 둘이 다 백설 같은 옷을 입고 각각 한 손에 꽃가지를 들고
다른 한 손은 형식의 손을 잡으려는 듯이 손길을 펴서 형식의 앞에 내어밀었다. 그러고 두 처녀는 각각 방글방글 웃으
며, '형식 씨! 제 손을 잡아 주셔요, 녜' 하고 아양을 부리는 듯이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형식은 이 손을 잡을까
저 손을 잡을까 하여 자기의 두 손을 공중에 내어들고 주저한다. 이윽고 영채의 모양이 변하여지며 그 백설 같은 옷이
스러지고 피 묻고 찢어진, 이름도 모를 비단 치마를 입고, 그 치마 째어진 데로 피 묻은 다리가 보인다. 영채의 얼
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입술에서는 피가 흐른다. 영채의 손에 들었던 꽃가지는 금시에 간 데가 없고, 손에는 더러운 흙을
쥐었다. 형식은 고개를 흔들고 눈을 떴다. 그러나 여전히 백설같이 차리고 방글방글 웃는 선형은 형식의 앞에서 손을
내어밀고, '형식 씨! 제 손을 잡으세요, 녜' 하고 고개를 잠깐 기울인다. 형식이가 정신이 황홀하여 선형의 손을 잡
으려 할 때에 곁에 섰던 영채의 얼굴이 귀신같이 무섭게 변하며 빠드득 하고 입술을 깨물어 형식을 향하고 피를 뿌린다.
형식은 흠칫 놀라 흔들었다.
형식은 다시 일어나 방 안으로 왔다갔다 거닐다가 뒤숭숭한 생각을 없이하노라고 학도들이 부르는 창가를 읊조리며 마당에
나왔다. 아까 소낙비 지나간 자취도 없이, 하늘은 새말갛게 맑고 물 먹은 별이 졸리는 듯이 반작반작한다. 남쪽이 훤한
것은 진고개의 전등빛이라 하였다.
형식은 물끄러미 하늘을 쳐다보았다. 저 반작반작하는 별에서 내려오는 듯한 서늘한 바람이 사람의 입김 모양으로 이따금
이따금 형식의 더운 낯으로 스쳐 지나간다. 형식의 물끓듯 하던 가슴은 얼마큼 서늘하게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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