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re · 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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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eur: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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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출소에 흰 복장 입은 순사가 추녀 끝 그늘에 들어서서 입으로 후후 바람을 내고 섰다. 그러나 형식은 더운 줄도 모르
고 이따금 마주 오는 구루마를 비키면서 안동 골목으로 내려온다.
형식의 정신은 극히 혼란하다. 경성학교에 사직표를 제출할 것은 생각하나, 그 밖에는 어찌하여야 좋을는지 생각이 없다.
형식의 머리는 마치 물끓는 모양으로 부걱부걱 끓는다. 여러 날 정신과 몸이 피곤한데다가 지금 학교에서 극렬한 사격을
받았으므로 형식은 마치 열병 환자와 같이 되었다. 다만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천근만근의 무게로 머리를 내려누를 뿐이
다.
아까 교실에서 일어난 사건은 형식에게는 가장 중대하고 가장 불행한 사건이다. 형식의 전 희망은 그 사년급에 있었고 형
식의 전 행복도 그 사년급에 있었다. 그 사년급이 있는지라 형식은 적막함이 없었고, 그 단순하고 무미한 생활 중에서도
큰 즐거움을 얻어 왔던 것이다. 그 사년급은 어떤 의미로 보아 지나간 사오 년간에 그의 재산이었고 생명이었었다. 또
그의 전심력을 다하는 사업이었었다. 그러고 그의 생각에 사년급 삼십여 명 학생은 영원히 자기의 정신적 아우와 아들이
되어, 마치 자기가 오매에 그네를 잊지 못하는 모양으로 그네도 자기를 잊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자기가 그네를 사랑하
는 모양으로 그네도 자기를 사랑하리라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한바탕 꿈이었다. 형식은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고 별로 친한 친구도 없으매, 그네를 그처럼 사랑하였거니
와, 그네에게는 형식 외에 부모도 있고 형제도 있고 사랑스러운 동무도 있었다. 사오 년래 혹 형식을 따르는 학생도 없
지는 아니하였으나, 가장 따르는 듯하던 이희경에게도 형식은 결코 중요한 사랑하는 자가 아니었었다. 형식은 이런 줄을
모르고 있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오늘에야 비로소 사년급 학생들의 눈에 비치인 자기를 분명히 깨달은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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