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 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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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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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전심력을 다하여 사랑하여 오던 자가, 또는 자기를 전심력을 다하여 사랑하거니 하던 자가 일조에 자기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줄을 깨달을 때에 그 슬픔이 얼마나 할까. 아마도 인생의 모든 슬픔 중에 '사랑의 실망'에서 더한 슬픔은
없을 것이다.
형식은 정히 이러한 상태에 있다. 지금 형식에게는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 이번 평양 갔던 일은 변명도 할 수 있으려
니와, 그것을 변명하는 것은 형식에게는 그다지 필요한 일이 아니다. 그것을 변명한다. 사년급 학생들이 자기를 사랑하지
아니한다는 진리로 변할 수 없는 것이다. 형식은 자기의 명예를 위하여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명예는 사람에게 셋째나
넷째로 귀중한 것이다. 형식은 지금은 목숨의 뿌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인생에 발 디딜 데를 잃고 공중에 둥둥 뜬 모
양이다. 형식이가 아주 말라죽고 말는지, 다시 어디다가 뿌리를 박고 살는지 이것은 장래를 보아야 알 것이다.
형식은 정신없이 집에 돌아왔다. 노파가 웃통을 벗고 마루에 앉아서 담배를 먹는다. 어깨와 팔굽이에 뼈가 울룩불룩 나오
고 주름잡힌 두 젖이 말라붙은 듯이 가슴에 착 달라붙었다. 귀밑으로 흘러내리는 두어 줄기 땀이 마치 그의 살이 썩어서
흐르는 송장물 같은 감각을 준다. 반이나 세고 몇 오리가 아니 남은 머리터럭과, 주름 잡히고 움쑥 들어간 두 뺨과,
뜨거운 볕에 시든 풀잎과 같은 그 살과 허리를 구부리고 담배를 먹는 그 모양,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준다.
그도 일찍 여러 남자의 정신을 황홀(케)하던 젊은 미인이었었다. 그의 생각에 천하 남자는 다 자기를 보고 정신을 잃
은 줄 알았었다. 자기의 얼굴과 몸의 아름다움은 영원하리라 하였었다. 그렇게 생각한 지가 불과 이삼십 년 전이었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과 몸에 있던 아름다움은 다 어디로 날아가고 말았다. 그가 흘리는 땀이, 즉 그 아름다움이 녹아내리
는 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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